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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편수 같은 정량 지표 때문에 학계가 얕아졌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질적 연구를 주로 하는 학자들이 임용에서 밀리고, 깊이 있는 연구자가 자리를 못 잡는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다만 그 비판은 계량화하기 전에는 더 나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정량 지표가 강화된 것은 그것이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다. 정성 평가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던 주관적 판단과 학연·인맥의 작용을 막을 방법이 달리 없어서였다. 수치화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니 정량 지표를 비판하려면 그것이 대체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지표를 줄이면 그 판단은 다시 사람에게 넘어간다. 그 사람이 예전보다 공정하리라는 근거가 있어야 지표를 줄이자는 말이 성립한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지표 자체가 아니라 지표가 만들어낸 결과에 피드백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편수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고, 그 연구가 무엇을 남겼는지는 다시 묻지 않는다. 되묻는 절차가 약하면 지표를 우회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없다.

공공기관 평가도 다르지 않다. 계량지표가 늘어난 것은 비계량 평가의 자의성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지표를 줄이자는 주장이 나올 때 물어야 할 것은 줄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다. 그 답이 없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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