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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새로운 것을 만나면 아는 것에 견주어 이해한다. 무엇과 비슷하고 무엇과 다른지를 확인하면서 실체에 다가간다. 유추는 그렇게 작동하고, 비교는 그 출발점이다.

호프스태터와 상데는 『사고의 본질』에서 아이가 엄마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예로 든다. 처음에는 자기와 엄마라는 하나의 관계만 있다. 그러다 다른 아이와 그 엄마를 보고,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를 보면서 자기 관계가 특별한 것이 아님을 안다. 비교를 거쳐야 개별 경험이 보편적 이해가 된다. 견줄 대상이 없으면 추론은 시작되지 않는다.

평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성과가 좋은지 판단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은 결국 다른 사례에서 온다. 절대평가라 부르는 것도 실은 과거의 자신이나 설정된 목표와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는 평가는 없다.

그러니 상대평가가 문제라는 비판은 번지수가 잘못됐다. 문제는 비교가 아니라 비교한 결과를 쓰는 방식이다. 우열을 매겨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로 사람을 나누는 것,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공공기관 평가도 다르지 않다.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는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등급이 어디에 쓰이는지가 문제다. 기관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아는 데 쓰이면 비교는 도구가 되고, 순위를 확정하고 배분하는 데서 멈추면 비교는 낙인이 된다.

참고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 에마뉘엘 상데, 『사고의 본질: 유추, 지성의 연료와 불길』, 김태훈 옮김, 최재천 감수, 아르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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