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의 임기는 3년이고 대개 단임으로 마친다.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연임은 매우 힘들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경험하듯 레임덕 기간을 감안하면, 초기 적응 시간을 최소화해야 그나마 성과를 낼 수 있다.
공공기관은 개별 법에 의해 보장된 사업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라 외부 시장의 경쟁을 통한 자극도 쉽지 않다.
구조적으로 리더십이 취약한 자리
리더의 강력한 무기가 인사와 자원 배분의 권한이라고 전제할 때, 공공기관은 기관장이 그 두 가지를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다.
직원들은 정년이 보장되고, 평가를 통한 연봉 차등도 쉽게 내기 어렵다. 오직 승진에만 규정에 따라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조와의 갈등도 3년짜리 단기계약직 기관장이 자신의 카리스마로 해결하기 어렵다.
예산 배분도 목적사업 이외의 사업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의 기존 구조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예산을 통해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는 뜻이다.
구조적으로 리더십이 매우 취약한 자리다. 물론 스펙 확보에는 더없이 좋은 자리이지만. 그래서 성과를 내려면 짧은 기간에 팔로워십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출신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는가
기관장 공모를 하면 크게 관료, 정치인, 교수 또는 전문가, 시민운동 출신, 내부 출신이 응모한다.
언론에서는 낙하산에 대해 부정적이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해피아 간의 결탁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들 간의 결탁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좋은 모습도 아니다.
하지만 리더로서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하는 점에서는 관료 출신과 정치인 출신이 확실히 탁월하다.
아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찰한 것이고 통계로 검증한 것은 아니다.
- 관료 출신
- 상급기관 관료 출신은 관료로서 훈련되어 리더 역량도 검증되었고 조직 정치에도 능숙하다. 업무 연관성이 있어 조직에서 말이 먹히기까지 별도의 노력이 필요 없다. 단점이라면 변화나 혁신이 필요한 경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고, 유착을 고착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다만 관료 출신이라도 그 조직의 업과 연관이 없으면 어렵다. 군 출신이 국방부 산하기관이 아닌 다른 공공기관에 가는 경우가 그렇다.
- 정치인
- 관료보다는 못하지만 현안이나 숙원 이슈를 해결하는 데 나름의 역량을 발휘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기대를 한다. 정권과 가깝다고 평가받는 정치인은 환영의 대상이다. 반면 조직 관리보다는 오래 해결되지 못한 숙원사업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고, 정치적 입장을 조직에 적용하거나 충성 경쟁을 통해 조직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 교수
- 총장 출신이면 모를까 조직 관리 경험이 없어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 개인과 공공기관 직원 사이의 사회적 위상은 교수가 위겠지만, 용역의 관점에서 보면 갑을 관계다. 직원들의 존중과 팔로워십을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 전문가
- 교수와 비슷하다. 독점사업이다 보니 그 사업을 운영해 본 경험과 경력을 가진 민간 전문가 자체가 드물고, 있더라도 갑을 관계로 얽혀 있다.
- 시민사회
- 현안 해결에서는 관료나 정치인만 못하고, 조직 안에서 권위를 세우기는 교수보다 어렵다.
- 내부 인사
- 딱히 내부에서 기관장이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공공기관 1급은 정부부처의 고참 사무관과 같은 급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바로 차관급인 기관장으로 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신분의 격차를 극복하는 일과 같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극복한다 해도 정치력이나 협상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러면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관료들의 공공기관장 선임을 무조건 비판하기 전에, 공공기관의 조직 구조와 작동 원리, 리더십과 팔로워십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단순히 출신 성분으로 낙하산이니 마피아니 하는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결국 리더는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으로 측정하는가. 당연히 기관의 성과다.
문제는 공공기관이 독점사업을 하다 보니 시장에서의 경쟁이나 재무성과를 주요 성과로 측정하기 어렵고 설득력도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하여 공공기관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다.
물론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를 지향하지만 상대평가의 성격을 상당 부분 띠고 있고, 조직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과문한 지식으로는 적어도 국내에서 이렇게 일관된 체계로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10년 이상 꾸준히 갱신되어 온 높은 품질의 평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부처 평가도 이 정도로 고도화되지 않았다. 민간기업도 주가나 재무성과만으로 평가하는 것의 불합리성 때문에 BSC 같은 성과관리 틀을 도입하지만 CEO의 성과를 온전히 담기는 어렵다. 불확실한 환경을 모두 고려하고 CEO의 성과만을 가려낼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에 바라는 것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 공격 이상의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다. 법적 하자가 없는 한 임명권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강감찬도 이순신도 낙하산이라면 낙하산이다. 출신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성과가 그 인사의 성패를 결정한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 아래 낙하산 여부 자체를 파헤치는 데 집중하기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낙하산이라 비판했던 인사의 경영성과와 나머지 비교집단의 경영성과를 검증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쪽으로 관점을 옮길 것을 권한다.